‘두샤’와 ‘두흐’, 같은 듯 다른 러시아어의 두 단어

(일러스트=알렉셰이 요르스)

(일러스트=알렉셰이 요르스)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에게는 육체 외에 영원불멸의 비물질적 실체가 내재해 있다. 러시아어에는 이를 가리키는 두 개의 비슷한 단어가 있는데, 바로 ‘두샤(душа)’와 ‘두흐(дух)’다. (전자는 한국어의 ‘마음’. ‘혼(魂, soul)’, 후자는 ‘정신’, ‘영(靈, spirit)’에 대응된다 - 편집자 주)각 단어는 나름의 의미적 뉘앙스와 연상구조를 갖고 있다.

신에게 바치는 것, 두샤

'두샤'는 감각적이며 감정적인 것으로 전적으로 인간적인 특징이다. 조화롭고 화목한 가정을 두고 '그들은 혼연일체로(마음이 맞게, 화목하게) 산다(Они живут душа в душу)'고 한다.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의 사람을 두고는 '마음이 넓다(широкая душа)'고 하고,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면 '마음을 열어제친 사람(душа нараспашку)'이라고 한다. 안톤 체홉의 단편 중에 '두셰치카(Душечка)'란 작품이 있다(한국어판 제목 '귀여운 여인'). 누군가를 사랑할 때만 삶의 활기를 띠는 여주인공 올가는 세 번의 결혼생활을 하며 그때마다 남편의 일에 철저히 동화된 삶을 산다. 그래서 '두셰치카'는 몰개성하며 남성에 의존적인 여성의 심리유형을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

누군가가 무엇을 좋아한다면, 그것이 '마음에 드는(по душе)' 것이며, 자신의 일에 '혼을 불어넣으면(вложить душу)'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반대로 하기 싫은 일에 대해서는 '마음이 당기지 않는다(не лежит душа)'고 한다.

깊은 감동을 주는 예술 작품은 '(영)혼을 사로잡는다/매료시킨다(брать за душу)'. 예를 들어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는 '심금을 울린다(задушевный)'고 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를 접하면 '(영)혼이 자유로워진다(отвести душу)'. 그런가 하면 오래 전 잃어버린 가족을 상봉시켜주는 인기 TV프로그램의 제목은 '온 마음으로(От всей души)'다. 이러한 개념은 은유적인 의미로 광고에도 쓰이고 있다. 한 러시아 초콜릿 브랜드의 카피문구는 '마음이 넉넉한(인심 좋은) 러시아(Россия – щедрая душа)'다.

마음과 몸이 어떤 연관을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상적인 상태에서 마음은 몸의 상체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뭔가에 크게 놀라면 '혼이 발뒤꿈치로 달아났다(душа ушла в пятки, 간 떨어질 뻔했다)'고 한다. 흔히 느낌, 감정 하면 심장을 떠올리므로 마음, 혼이 심장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가정해볼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머리와 연관이 있다는 증거도 있다. 미친/실성한 사람을 '마음이 아픈(душевнобольной)' 사람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사림이 죽는 순간 혼은 육체를 떠난다. 그래서 죽음을 두고 '신에게 혼을 바친다(отдать Богу душу)'고 한다.

기분이 안 좋을 때 '(영)혼을 고양이가 발톱으로 긁는 것 같다(На душе кошки скребут)'고 표현하며,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는 '속을 탈탈 털어도 한 푼도 없다(У него за душой ни копейки)'고 한다.

육체적 만족 너머 있는 것, 두흐

'두흐(дух)'는 '숨', '정신', '영'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엄청난 속도감(예를 들어 산악스키를 타고 활강할 때)을 표현할 때 '숨이 멎는 듯하다(дух захватывает)'고 하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는 호흡이 곤란하다는 뜻이다. 빨리 달리는 것에 대해서는 '숨이 넘어가도록 질주하다(мчаться во весь дух)'라고 표현할 수 있다.

막중한 책임을 져야할 일을 앞에 두고 선뜻 용기가 나지 않을 때 '정신(패기)이 부족하다(духу не хватает)'고 한다.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사기(боевой дух, 전투정신)'이 충만해야 한다. 한편 은유적으로 '숨을 거뒀다(испустил дух)'또는 단순히 '숨이 달아났다(дух вон)'라는 표현을 빌어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이 두 표현은 현대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두샤'와 비교하면 '두흐'에는 종교적 요소가 훨씬 뚜렷하게 강조돼 있다. 이는 무엇보다 기독교에서 삼위일체 중 (성부 및 성자와 나란히 있는) 하나가 '성령(Бог Святой Ду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дух)'과 관계된 것은 몹시 엄격한 금욕주의적 성격을 띤다. 영이란 세속과 일상의 대척점에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부유한(духовно богатый)' 사람의 내적 위계질서를 보면 비물질적 가치가 물질적 이익과 육체적 만족보다 위에 있다(굶주린 사람에 대한 풍자적 표현 중 하나가 '성령으로 배를 채우다(питается святым духом)'이다). 러시아에서 성직자를 '영적인 자(духовное лицо)'라고 하며, 이들을 가리키는 일반용어인 '사제'는 러시아어로 '두호벤스트보(духовенство)'인데, 이는 '영적계급'이라는 뜻이다.

'정신(영)적인 것'을 뜻하는 '두호브노스티(духовность)'라는 단어는 특별한 뉘앙스를 갖게 됐으며, 최근 들어와서는 그 반의어인 '베즈두호브노스티(бездуховность)'가 더 자주 사용된다. 보통 (참된 가치에 대한 관심을 대체하는) 대중문화 상품의 확산을 비판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된다. 심지어 더욱 고상한 이익, 즉 종교적 이익이나 국가적 이익을 위해 심각한 물질적 결핍을 견딜 수 있는 러시아인의 특징으로 러시아적 '정신성'이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이 단어가 풍기는 과도한 파토스 때문에 소련 시절 인텔리겐치아들은 '두홉카(духовка)'라는 단어로 그것을 유머러스하게 대체하기도 했다('두홉카'는 가스오븐렌지의 오븐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초의 기계번역 프로그램 개발 당시 언어학자들이 테스트를 위해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Дух бодр, плоть же немощна)'라는 성경구절을 골랐다. 개발자들은 번역 프로그램에 먼저 이 구절을 영어로 번역한 후, 다시 러시아어로 번역하도록 했다. 그 결과 '보드카는 맛이 강하고 고기는 부드럽다(Водка крепкая, а мясо мягкое)'라는 결과가 나왔다.

눈에 보이지 않고 육신이 없으면서 자연과 인간의 삶에 참여하는 존재들을 '두히(духи, 유령)'라고 부른다. 착한 유령도 있고 나쁜 유령도 있다. 한편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소련 군인들은 그들에 맞서 싸운 아프간 전사들을 '유령(духи)'이라 부르기도 했다(이슬람 반정부 게릴라 전사들이 스스로 자신을 일컫는 '두시만(душман)'이란 단어를 희화해서 부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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