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하는 언어… ‘요원’이냐 ‘스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일러스트=니야즈 카리모프)

(일러스트=니야즈 카리모프)

낱말은 어떤 사건이나 개념들을 중립적으로 지칭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평가도 담고 있다. 정치인과 선동가들은 낱말의 이런 특성을 ‘네편’을 폄훼하고 ‘내편’을 미화하는 데 적극 활용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 대해서는 긍적인 뉘앙스를 가진 낱말을, 타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진 낱말을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돈을 펑펑 쓰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우리가 그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그가 '통이 크다'고 말하지만, 감정이 좋지 않다면 '낭비벽이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돈을 잘 안 쓰는 사람에 대해서는 우리는 전자의 경우엔 '검약하다'고 하고 후자의 경우엔 '인색하다'고 한다. 이런 표현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예가 한 국가의 정보부 직원들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우리나라' 정보부에는 '정보부 요원(разведчик)'이 근무하고, '적국' 정보부에는 '스파이(шпион)'가 근무한다는 식이다. 이와 비슷하게 점령군과 싸우는 무장한 이들을 가리켜 동조자들은 '레지스탕스(партизан)'라고 부르지만, 점령군은 그들을 '반도(бандит)'라고 부른다.

러시아에서 자주 인용되는 로버트 번스의 시구가 있다. "반란은 성공으로 끝나는 적이 없다. 성공했다면 반란으로 불리지 않았을 것이므로." 1917년 가을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자 처음에는 '10월 쿠데타' 또는 '10월 무장봉기'로 완곡하게 불렀다. 하지만 소비에트 권력이 굳건하게 자리 잡자 '위대한 10월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더 간결하고 중립적인 명칭인 '10월 혁명'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소련 붕괴로 이어진 1991년 8월의 사건에 대해서는 '혁명'이라는 말이 사실상 거의 쓰이지 않는다. 대신 '8월 쿠데타'라는 말로 흔히 불린다. '8월 쿠데타'의 목표는 소련 붕괴를 막고 공산주의 권력을 유지하고 개혁을 중지시키려는 것이었다. 이 시도가 성공했다면 '쿠데타(путч)'가 아닌 다른 이름을 얻었을 것이다.

1993년에도 '쿠데타'가 한 번 더 있었다. 옐친 대통령을 권력에서 축출하려는 당시 최고소비에트(Верховный Совет, 소련 시절 선출된 의원들로 구성된 당시 최고 권력기관)의 실패한 이 봉기는 '10월 쿠데타'로 불리고 있으며, 이를 끝으로 러시아에서 소비에트 권력은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 반면에 최고소비에트의 지지자들은 옐친이 '위헌적 쿠데타(антиконституционный переворот)'를 일으켰다고 말하며 당시 반옐친 최고회의 의원들이 진을 치고 있던 최고회의 건물에 대한 전차 포격을 투고 '의회 포격(расстрел парламента)'이라고 부른다.

언어를 이용한 선동은 전시에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때 각 진영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고 정의로운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쓴다. 예를 들면, 1939년 9월 소련 적군(敵軍)의 폴란드 침공은 소련 역사 교과서에 '서부 우크라이나와 서부 벨라루스의 해방'이라고 기술되었다(그런가 하면 나치독일은 1941년 6월 소련 침공을 '예방 공격(превентивный удар)'이라고 선전했다). .

20세기 후반에는 군사행동을 가리키는 새로운 '완곡어법'들이 굳어졌다. 1968년 8월 소련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은 "체코슬로바키아 지도부의 요청에 따라" 체코슬로바키아 국민에 "우방국으로서의 지원"을 위해 "제한적 규모의 군병력"을 도입한 것으로 기술되었다.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에도 "제한적 규모의 병력"이 파견됐는데, 이때는 이미 "우방국으로서의 지원"이 아니라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라고 표현됐다.

1990년대 체첸 전쟁도 '자치스트카(зачистка, 소탕작전)'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마을에 숨어 있는 무장한 적("테러범들")을 싹쓸이식으로 섬멸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문제는 '소탕' 과정에서 민간인도 희생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2008년 8월 조지아와의 무력충돌 당시 러시아의 행동은 '평화강제(принуждение к миру, peace enforcement)' 활동으로 불렸다.

1970-80년대 소련에서 유행한 유머가 있다. "질문: 전쟁이 일어날까? 대답: 전쟁은 안 일어나. 하지만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는 평화를 위한 투쟁이 있을 뿐이지."

21세기 들어와서는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라는 타이틀이 대부분의 군사작전을 정당화하는 것이 되었다. 그 가장 극명한 예를 현재의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볼 수 있다. 키예프 중앙정부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자칭 인민공화국들에 대한 군사작전을 두고 공식적으로 'ATO'라는 약자로 부르고 있다. 이는 '대테러작전'의 약자이다. 그 논리에 따르자면, 중앙정부군의 '대테러작전'에 대항해 무장투쟁을 벌이는 세력은 모두 '테러리스트'로 분류된다. 동부의 저항세력을 일컫는 다른 말들을 보자면 부정적인 의미로 '분리주의자(сепаратист)'가 있고 긍정적으로는 '자경대(ополченец)'라는 말이 있다.

크림반도가 러시아로 편입된 지난 봄 우리는 언어 조작을 통한 선동전을 여실히 목격할 수 있었다. 러시아가 이를 주민투표를 통한 "크림의 러시아 재편입(воссоединение Крыма с Россией)"이라 부른 반면 우크라이나에서는 "합병(аннексия)" 혹은 심지어 2차대전 전야 나치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을 가리키는 독일어 "안슐러스(Anschluss)"라 일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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