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 대신 니콜라?”… 개방 이후 러시아인의 식탁 어떻게 달라졌을까

(일러스트=니야즈 카리모프)

(일러스트=니야즈 카리모프)

지난 사반세기 동안 러시아인의 식탁은 외국에서 건너온 새로운 음식으로 가득 찼다. 한편, 그 이국적인 명칭들 ‘속’에는 종종 옛 소련 음식이 ‘고명’으로 들어있는 경우도 많다.

1990년대 철의 장막이 걷히고 시장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러시아인의 음식문화는 크나큰 변화를 겪었다. 새롭게 단장한 식당과 카페들은 무언가 새롭고 이국적인 것으로 손님들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패스트푸드 체인점 '맥도날드'를 이국적이라 부르기는 어렵지만, 러시아에 서구식 음식문화가 등장하는 신호탄이 된 것이 바로 맥도날드였다. 1980년대 말 모스크바에 첫 선을 보인 맥도날드 1호점 앞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의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소련사람들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서방의 음식인 '햄버거'를 맛보기 위해서 마치 고급식당에 가듯이 이곳을 찾았다. 종이컵에 얼음과 함께 담긴 코카콜라를 그들은 얼음까지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돈을 주고 산 이상 남겨도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진 맥도날드 체인점들은 이제 처음 생겨났을 때처럼 '레스토랑'이 아니라 제 본연의 자리를 되찾았다. 사람들은 이제 맥도날드를 소련시절의 '자베갈롭카(забегаловка)', 즉 '지나가다 들려서 간단히 요기를 하는 곳' 정도, 그러니까 정확히 '패스트푸드'점으로 인식한다. 게다가 흔히 대화중에는 이제 맥도날드를 줄여서 '맥덕'이라 부르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맥덕은 디즈니 만화영화 '도날드 덕'에 나오는 갑부 삼촌 '스크루지 맥덕'을 연상시킨다). 서구에서 들어온 또 다른 패스트푸드로는 거리에서도 판매되는 핫도그가 있다. (러시아어 사전에 '핫도그'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1년이다.) 피자리아 같은 피자전문점에 가거나 집에서 주문해먹는 피자도 인기다. 거리 노점에는 기다란 바게트 샌드위치를 비롯한 다양한 샌드위치가 판매된다. 가장 최근에 러시아로 들어온 패스트푸드로는 '미트볼'이 있다(러시아식 미트볼인 '프리카델키(фрикадельки)' 보다는 크고 조금 더 큰 미트볼인 '테프텔리(тефтели)' 보다는 작다).

평일 낮에는 카페와 식당에서 저렴한 '비즈니스 런치' 메뉴가 제공되는데, 이 비즈니스 런치는 소련 시절 '점심 정식(комплексный обед)'이라고 불렀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개 네 가지 요리로 구성된다. 포스트소비에트 시대로 넘어와 영화관에서 대형 사이즈 팝콘을 먹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오늘날 다양한 종류로 생산되는 감자칩은 소련 시절엔 단 한 가지 종류밖에 없었고 그 이름은 '바삭한 감자(Хрустящий картофель)'이었다('바삭한 감자'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는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지금도 생산된다). 소련 시절을 풍미하던 양념소스 '소우스 토마트니(Соус томатный, 토마토 소스)'는 이제 정통 '케첩'에 완전히 밀려났다.

이탈리아 밀가루 음식은 최근에서야 어느 정도 '파스타'라는 명칭이 일반화 되었다. 이전에는 '스파게티'나, 소련 시절 '마카로니'밖에 없었다. 인기 있는 '볼로네즈 스파게티'는 '해군식 마카로니(макароны по-флотски)'로 불렸다. 식당에서 '라자냐'나 '파에야'를 찾아볼 수는 있으나, 전통적인 펠메니의 일종으로 여겨지는 '라비올리'와 더불어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일식집 수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러시아에서 일본 본토보다도 더 많은 '스시'와 '롤'을 먹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뿐만 아니라 퓨전 음식을 선보이는 퓨전 식당도 많다. 종종 퓨전 식당은 함께 내놓을 수 없을 것 같은 음식들을 한번에 내놓기도 한다. 예를 들면 피자와 롤, 보르시를 한 메뉴 안에 넣는 것이다.

러시아인의 식단에 요구르트, 크루아상, 뮈즐리가 등장한 것은 포스트소비에트 시대 들어와서였다. 백 년 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요구르트와 '요구르트'라는 단어는 그 동안 까맣게 잊혀져 왔다. 과거 처음 단어가 차용됐을 때는 원어인 불어처럼 강세가 '우'에 주어졌는데(/야구르트/), 90년대 재차용됐을 때는 영어식으로 강세가 '오'에 주어졌다(/요구르트/). 얼마 전에는 이때문에 언어학자들 사이에 '요구르트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요구르트'의 현대적 발음과 함께 백 년 전의 발음을 병기한 노어대학술사전 집필진의 "무식함"을 비난하고 나선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요리와 프랑스 요리의 역사적 상호작용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건은 '비스트로'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자면 나폴레옹군을 섬멸하고 파리에 입성한 러시아 병사들은 식사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 파리의 식당 주인들에게 연신 "비스트로! 비스트로!(Быстро! Быстро! 빨리빨리)"를 외쳤고 이때문에 당시 파리 거리에 노점식당들이 비스트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프랑스로 건너갔던 '비스트로'는 1990년 초반 맥도날드의 대항마 격으로 생겨난 러시아식 만두·파이 전문점 '러시아 비스트로(Русское бистро)' 덕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예전에 요리 용어는 대부분 불어에서 새로 차용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날에는 그 대부분이 영어에서 온다. (그 이유는 오늘날 러시아 문화 전체가 영미권 문화의 영향을 지대하고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실거리는 어떨까? 소련 시절 우리는 그냥 과일주스를 마셨는데, 이제는 '후레시', 그러니까 '갓짜낸(свежевыжатый)' 생과일주스를 마신다. 과거 볼 수 있었던 커피는 언제나 '블랙(черный)'이거나 (물론 블랙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밀크커피(с молоком)' 두 종류뿐이었다. 기억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것은 밀크커피라기 보다는 커피 맛이 나는 밝은 갈색의 액체에 가까웠다. 이제 우리는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라떼, 카푸치노, 종종 리스트레토 중에서 커피를 골라 마신다.

첫 러시아산 '콜라'의 등장은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앞두고 노보로시스크 시에 생산 공장이 설립된 '펩시콜라'는 그전까지 적대적인 부르주아 문화를 대표하는 위해요소로 선전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소련 음료계를 독점적으로 군림했다. 1990년대에 들어와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야 '펩시콜라'와 '코카콜라'가 경쟁하기 시작했고, 이 두 슈퍼브랜드와 더불어 시장에는 다양한 모조 콜라가 생겨났다. (나는 그 중 이미 오래전 사라진 '헤르쉬 콜라'가 기억에 남는다.)

최근 몇 년간 외국산 청량음료 대신 러시아 전통 천연 발효음료인 '크바스' 등 자연 발효의 방법으로 생산되는 러시아 국산 천연 음료를 마시자는 광고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니콜라'라 불리는 한 크바스 브랜드의 광고 슬로건은 특유의 말장난으로 이루어져 있다. "크바스는 콜라가 아니야! 니콜라를 마셔!(Квас - не Кола, пей "Николу"!)" 여기서 상표명 '니콜라'는 '콜라가 아닌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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