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쟁

‘황제 폐하의 전쟁 선포일. 1914년 7월 20일, 겨울궁전’ (사진제공=올레샤 쿠르퍄예바)

‘황제 폐하의 전쟁 선포일. 1914년 7월 20일, 겨울궁전’ (사진제공=올레샤 쿠르퍄예바)

올해 세계는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이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全)러시아장식응용예술박물관에서 개인 소장품들도 꾸민 ‘1차 세계대전의 증인들(“Свидетели” Первой мировой)’이란 전시회를 열었다.

1차 세계대전 참전 여성 자원부대를 그린 영화 '죽음의 대대(Батальон смерти)' 촬영 작업이 페테르부르크에서 막 끝났다. 감독은 러시아 최고 영화감독 중 한 명인 드미트리 메스히예프(Дмитрий Месхиев)가 맡았고, 제작은 나치 독일의 소련 영토 침공에 관한 영화 '브레스트 요새(Брестская крепость, 2010)'를 제작한 이고리 우골리니코프(Игорь Угольников)가 맡았다. 우골리니코프는 바로 2차 세계대전 관련 영화를 찍던 자리에서 부당하게 잊혀진 1차 세계대전에 관한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전이 선포되는 순간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바로 1914년에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러시아의 1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포했다. 페테르부르크의 황실 겨울궁전 앞에 군중이 모여 있고, 사람들은 긴장한 모습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아직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 초상화가 가장 많았다. 몇몇은 아는 얼굴이다. 황제와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 알렉세이 브루실로프 장군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이다. 전시관 벽면에는 아마추어 사진사들이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수백 장의 사진 안에는 이제는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져가는 전쟁을 맞닥뜨린 평범한 사람들과 병사, 장교, 이름 없는 영웅들의 얼굴이 들어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은 혁명과 내전, 2차 세계대전 등 그 이후 벌어진 러시아 역사의 사건들과 비교할 때 별로 연구되지 못했다. 많은 순간들이 신화화되었고, 많은 세부사항들이 이미 복원이 불가능하다. "나는 사진 속 인물들 중에서 전체의 5% 가량만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죽음을 향해 걸어간 이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는 가질 수 있다." 전시회 큐레이터인 안드레이 스트로가노프의 말이다.

‘군사작전 현장으로부터. 포병 정찰’ (사진제공=올레샤 쿠르퍄예바)
'군사작전 현장으로부터. 포병 정찰' (사진제공=올레샤 쿠르퍄예바)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은 민족적 자의식이 고양되는 때이다. 사람들은 가능한 한 전선에 힘을 보태곤 했다. 전시회는 전선을 위해 채권 매입을 독려하는 수많은 현수막을 수집해 놓았다. 채권은 1915년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다. 국채는 보통 연이율 5%로 매각되었다. 1916년 무렵 러시아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자 국채 매각은 거국적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면 돈을 돌려준다고 약속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볼셰비키들이 차리 정권의 채무 변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율 5.5%의 전시 국채를 매입하자! 풍부한 탄약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사진제공=올레샤 쿠르퍄예바)
"이율 5.5%의 전시 국채를 매입하자! 풍부한 탄약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사진제공=올레샤 쿠르퍄예바)

전시회에서는 폿스타니츠키와, 스놉코프, 찹키나, 나가페탸네츠 등의 전문수집가들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사진, 엽서, 현수막, 잡지들이 소개되었다. 당시 잡지들은 군수품으로 떼돈을 벌어들이는 부패관리들에 대한 조롱을 담고 있었다. "전쟁은 항상 누군가의 이해타산에서 시작된다.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공적은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다. 전쟁에 자원해 공적을 세우고 상이군인이 된 이들... 그들은 영웅이었다." 스트로가노프의 말이다.

스트로가노프의 말에 따르면, 러시아 문화부는 러시아 역사의 영웅적 순간들을 보여주는 역사 전시회 시리즈를 계속 열 계획이다. 이미 5월에 대조국전쟁(2차 세계대전) 관련 전시회를 계획 중인 가운데 장갑차 실물을 박물관에 들여 오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5월 25일까지 계속되는 전시회는 모스크바 델레가츠카야 거리 3번지(ул. Делегатская, д. 3)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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