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따라 호칭 수백 가지 … 소련 붕괴 뒤 제대로 된 용어 못 찾아

(일러스트=니야즈 카리모프)

(일러스트=니야즈 카리모프)

러시아 호칭 문화의 올바른 이해

러시아어 호칭은 부드러운 호칭, 정중한 호칭, 무례한 호칭, 공식적 호칭 등 과장하면 수백 가지나 될 정도로 다양하다. 상대에 대한 호칭으로 미루어 사회적 지위도 서로 가늠할 수 있다. 난처한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면 어떤 호칭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한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호칭에 대한 특별 원칙과 대화 예절이 있다.

제정러시아 시대에는 수십 가지의 다양한 호칭이 있었으며, 그중 일부는 법으로 정해지기도 했다. 이른바 '관등표'라 불리는 14등급의 계급제도에 따라 각 관등에 대한 호칭도 달리 정해졌다. '나리'라는 뜻의 일상적인 경칭으로는 '바샤 체스티' '바샤 밀로스티' '밀로스티비 고수다리'가 있는데, 나리나 마님이란 뜻이다. 이 중 '밀로스티비 고수다리'의 약칭인 '수다리(남성형)'나 '수다리냐(여성형)'가 관등에 관계없이 가장 널리 쓰이는 호칭이었다.

1917년 혁명으로 그런 계급이 없어지자 이런 경칭도 구식이 됐다. 두 경칭만 살아남았다. 일반적으로 친근하게 사용되는 형태인 '토바리시(동무)'와 공식 상황에서 사용되는 '그라즈다닌(시민)'이다.

소련이 붕괴되자 그것도 구식이 됐다. 그런 단어를 사용하면 종종 말하는 사람이 공산당원이라는 점이 부각됐고, 그렇지 않으면 지나간 소련 시절을 상기시켰다. 그 뒤 20년이 지났지만 일상 언어에 생긴 빈틈과 공백은 채워지지 않고 있다. 공식 용어로 '고스포딘(Mr라는 뜻)'이 자리를 잡았지만 일상 생활엔 아직 그런 경칭이 없다. '수다리'를 부활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났으며, 오늘날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경칭은 남성에겐 '몰로도이 첼로벡(젊은이)', 여성에겐 '데부시카(아가씨)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에게 이런 경칭은 우습게 들린다. 자주 사용되는 '무시나(남자) 또는 '젠시나(여자)라는 경칭은 저속하게 들린다.

낯선 이에게 물어볼 때, 말하는 사람은 보통 '실례지만(이즈비니쩨)'이라며 시작한다. 그러나 '실례지만...'이라는 말에는 중요한 경칭이 담겨 있다. 즉 정중하고 공식적인 존댓말이란 점인데 '당신(븨)'이란 말이 생략된 것이다. 이때 '당신'은 손윗사람이나 손님을 대할 때 표현되는 정중함을 담고 있다.

'너(띄)'를 사용하는 것은 친숙한 관계를 의미한다. 주로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 통용된다. 재미있게도 러시아에선 부모-자식, 조부모-손자도 서로 '너(띄)'라고 부른다. '웃어른에게 너라니!'라고 할 법도 하다. 우리말론 '너'로 밖에 번역되지 않아 무례하게 비치지만 실제론 '가까운 사이'란 의미를 담은 아주 다정한 단어다.

'띄'는 상호 합의에 따라 사용되기도 한다. '나 띄(우리 너로 부르자)'라는 식의 합의다. 그런데 멋대로 '띄'라고 부르면 무례한 것으로 간주된다. 싸울 때나 막 나갈 때 위 아래 없이'띄'라고 소리지른다. 예의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소탈한 남성들 사이에도 이 원칙이 반드시 통하진 않고 '형씨(무직)'나 '자네(브라탄)'와 같이 약간 거칠고 친근한 호칭이 애용된다.

마지막으로, '이름과 부칭'의 특별한 의미다. 아래 사람이 윗사람을 부를 때나 부하직원이 상관을 부를 때,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정중한 태도가 필요한 상황에서 상대방의 이름에 상대방 아버지의 이름(특별한 형태)을 덧붙인다.

예를 들어, '이반 페트로비치' 또는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등이다. '페트로비치의 아들 이반씨'나 '알렉산드로브나의 딸 마리아씨'라고 하는 식이다. 가족적이고 친근한 호칭에는 부칭만 사용되기도 한다 '이반 페트로비치'가 아니라 '페트로비치'라고 부르는 식이다.

소련 시절 각급 공산당 기관에는 서로 이름과 부칭을 부르면서도 '너'라고 칭하는 다소 이상한 예절이 있었다. 이는 공식적인 정중함의 표현이 이데올로기적인 '형제애'와 '평등'에 대한 강조와 결합된 형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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