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의 마슬레니차

마슬레니차를 맞아 흥겨워하는 군중들은 왁자지껄하고, 젊은이들은 썰매타기와 변장을 즐긴다. (사진제공=이타르타스)

마슬레니차를 맞아 흥겨워하는 군중들은 왁자지껄하고, 젊은이들은 썰매타기와 변장을 즐긴다. (사진제공=이타르타스)

봄을 맞이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축제 마슬레니차를 맞기 위해 일년 내내 돈을 모으는 서민 가정부터 승마와 무도회 같은 상류사회의 오락을 즐기는 황실 가족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모든 가정은 마슬레니차를 지냈다. 올해도 봄을 맞아 게오르기 마나예프 기자가 기록보관소에서 모스크바의 마슬레니차 주간에 대한 1913년도 ‘모스콥스키예 베도모스티’ 신문 자료를 발견했다. Russia포커스가 100년 전에 쓰여진 기사의 내용을 발췌하여 소개한다.

모두 풍요로운 마슬레니차 맞으시기를! 눈은 아직 남아있지만 햇살은 강해졌다. 아직 봄은 아니지만 그 숨결이 가까이 느껴진다! 봄을 불러 빨리 오도록 하자! 마슬레니차를 맞아 흥겨워하는 군중들은 왁자지껄하고, 젊은이들은 썰매타기와 변장을 즐긴다. 이미 꽃이 피기 시작한 곳, 흥에 겨운 어릿광대 피에로와 알레키노가 뛰어다니는 거리, '카니발의 왕자'가 나타난 곳에는 더욱 큰 웃음과 기쁨이 흘러 넘친다! (중략)

러시아의 마슬레니차는 유럽의 카니발(사육제)와 마찬가지로 순수한 민간 축제에 속하며, 이 축제에 반대하는 정교회는 여러 차례 분노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여러 민중 축제들 사이에서 마슬레니차는 어정쩡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중략) 마슬레니차는 독자적인 축제이다. (중략) 태생적 개념에 따르면 이는 풍년을 간원하고 부르는 듯한 모사행위와 의식을 행하는 풍년의 축제, 예로부터 내려오는 농촌 축제였다.

마슬레니차 축제의 여러 풍습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 인형을 들고 즐겁게 떠들고 노래 부르며 마을을 돌면서 덕담을 해 주고 그 보답으로 마슬레니차의 의식들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블린을 대신 받는다. 블린은 고대 로마 때부터 내려온 팬케이크로 '마나'(초자연적인 힘), 조상의 혼령, 일족을 보호하는 식물령에게 바치는 제물이다. 러시아에서도 추모식에서는 항상 블린을 대접한다. 그 다음 이 짚인형을 땅에 묻거나 태우는데 이는 겨울과 여름의 싸움, 그리고 겨울의 죽음을 나타내는 매우 관습적인 모티브이다. 이 의식은 러시아와 유럽뿐만 아니라 고대 멕시코에서도 널리 행해졌다. 짚인형의 형상을 하고 죽는 것은 겨울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으로 대지를 비옥하게 하는 식물령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강 위에서 짚인형을 태우는 데도 이유가 있다. 이는 비를 기원하는 관습적인 의식이다. 서유럽의 수많은 농촌에서는 신혼부부의 침대에 이러한 짚인형을 눕히는 풍습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중략)

봄을 맞이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축제 마슬레니차를 맞기 위해 일년 내내 돈을 모으는 서민 가정부터 승마와 무도회 같은 상류사회의 오락을 즐기는 황실 가족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모든 가정은 마슬레니차를 지냈다. (사진제공=개인 보관)
봄을 맞이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축제 마슬레니차를 맞기 위해 일년 내내 돈을 모으는 서민 가정부터 승마와 무도회 같은 상류사회의 오락을 즐기는 황실 가족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모든 가정은 마슬레니차를 지냈다. (사진제공=개인 보관)

그렇다면 마슬레니차 춤은 어떤 의미일까? 이 춤 또한 종교적인 의식에 포함된다. 춤은 원래부터 종교적인 의식이었다. 원시인은 춤으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오늘날의 발레리나만큼이나 멋지게 전달했다! 춤은 식물령으로부터 대답을 불러내는 의식을 흉내낸 것이다. 말레이인과 기니인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은 후 옥수수 씨를 뿌렸다. 수확할 곡물도 그처럼 풍요롭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독일인은 씨를 부릴 때 금반지를 끼는데, 그 반지처럼 옥수수도 노랗게 잘 익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블린을 많이 먹는다고 부끄러워하지 말지어다, 우리도 앞으로 다가올 행복한 수확을 상징하고자 하는 것이니.

마슬레니차의 대표적인 의식은 씨앗이 이삭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변장 의식이다. 동시에 변장은 다른 의식들과 마찬가지로 식물령을 모사하는 의식이다.

간신히 불씨를 유지하고 있는 고대 신앙의 희미한 불빛을 따라가보며 의미를 새겨보고, 오늘의 우리를 옛날과 이어주는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수세기의 세월은 이 의식들을 소중하게 간직해 왔다. 아마도 가끔은 그 의미를 잊어버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여기에 의식과 외형의 중요성이 있다. 외형은 때때로 잊혀진 본질을 떠올리게 하고, 우리의 생각 속에 매일매일의 걱정에 포기해버린 정신적인 면을 일깨워준다. 이 의식들을 보존하고, 풍요의 자비로움을 간직하자! 모두 풍요로운 마슬레니차 되세요!

S. K.

'모스콥스키예 베도모스티' 신문. 19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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