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대재는 고난인가 정화 의식인가?

사순대재때가 되면 사람들은 유제품, 고기, 술을 금하고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기도와 신에 대한 묵상으로 보낸다

사순대재때가 되면 사람들은 유제품, 고기, 술을 금하고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기도와 신에 대한 묵상으로 보낸다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은 지금 사순대재(四旬大齋) 네 번째 주간을 보내는 중이다. 신자라고 해서 모두 금식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금식을 지키는 이유도 단지 신앙심 때문만은 아니다.

러시아 정교회력에는 절기마다 네 번의 금식기간이 있다. 그 중 사순대재가 가장 길다. 사순대재는 마슬레니차(러시아의 사육제)와 부활절 사이 7주간 계속된다. 이 기간에는 기도와 고행을 하며 특정 음식을 금식한다. 정교신자들은 식단에서 주로 육류와 유제품을 금식하고 밀가루 음식과 채소, 과일을 먹는다. 모든 음식은 식물성 식용유로 조리하는데 민간에서는 그래서 식용유를 '금식유(포스노예 마슬로)'라고 부른다. 사순대재의 3주와 6주가 끝날 때는 생선 요리가 허용되며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소량의 적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 사순대재 마지막 주간은 가장 엄격하게 금식한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기름 없이 조리되지 않은 음식만 허용되며, 주의 만찬 목요일에는 버터와 삶은 요리, 포도주를 마신다. 금요일에는 하루 종일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며 부활절 전야인 토요일에는 버터를 제외한 삶은 음식을 먹는다. 부활절은 사순절을 마무리하고 그 동안의 모든 금기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러시아에는 사순대재를 앞두고 고해신부를 찾아 조언을 얻고 금식을 철저하게 지키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도 있지만 다이어트 목적이나 시험삼아, 혹은 몸의 정화를 위해 단식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그저 다들 하니까 따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드미트리예로힌 (32) – 식탐을참는의지력테스트로금식

삼 년 전에 딱 한 번 금식을 시도했습니다. 식탐을 참는 사람들이 예전부터 부러웠어요. 의지력도 시험하고 단식의 효과도 궁금하기도 했어요. 그냥 하루 아침에 유제품, 고기, 생선, 술을 딱 끊었죠. 그 때는 스스로가 대견스럽더군요.

식구 중에는 단식하는 사람이 없어 제가 먹을 것은 따로 조리해야 하는 적도 있었어요. 식료품점에서 재료를 구입할 때도 포장지에 적힌 성분을 따지며 달걀이나 유제품이 들어간 것은 피했습니다. 직장에서 금식이 쉽지 않아서 주로 견과류나 말린 과일로 끼니를 때웠어요.

사순절 내내 금식을 철저하게 지켰어요. 마지막 두 주간은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지만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의지력을 테스트해본다는 허영심, 거짓 기도가 금식의 본질을 거스른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신앙심이 깊지 않지만 신의 존재를 믿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어요. 그래서 삼 년 전 시험에서 성취감 보다는 부끄러움을 느껴요. 그때 이후로 어떤 일회성 행동으로 내가 옳다고 과시하려 하지 않습니다.

알료나라노바야 (21) – 다이어트를위해금식선택

체중감량은 저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예요. 그렇다고 뚱뚱한 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지만 주기적으로 3, 4 킬로는 감량을 해야 해요. 겨울동안 체중이 불었다가 여름을 앞두고 다이어트를 하는 식이라 사순대재를 아주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어요. 저는 신을 믿지만 금식은 사순절에만 해요. 처음 금식을 한 건 열 여섯 살 때였어요. 친구들과 누가 오래 버티나 금식 내기를 했던 거죠. 세 명 중 한 명이 근육긴장이상이 와서 중간에 포기했어요. 현기증이 나고 공간감각을 상실하는 병이었어요. 의사가 그 친구에게 금식은 절대 금물이라고 했대요.

금식을 하면 최대 5킬로까지 빠지던데요. 신을 경배하는 동시에 몸매를 가꿀 수 있다니 꽤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저를 위해서 엄마가 죽, 샐러드, 고기를 넣지 않은 수프를 조리해주세요. 견과류, 특히 피스타치오를 좋아해서 하루 종일 견과류와 말린 과일만 먹고 버틸 수도 있어요. 친구들은 햄스터 모이를 먹냐고 놀리지만 전 괜찮아요. 그래도 다른 애들과는 달리 적어도 계율을 지키려고 노력은 하는 거잖아요.

세르게이콜리덴코 (37) – 믿음을증명할필요는없어요.

처음 금식을 한 건 꽤 오래 전 일입니다. 그때는 신앙심 보다는 사랑하는 아내 때문이었죠. 제 아내는 당시 종교에 몰입해서 모든 금식일을 지켰어요. 그때 저는 허기지는 게 두려운 나머지 음식을 곱빼기로 그릇에 담아 평소보다 훨씬 더 먹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체중이 줄기는커녕 5킬로가 늘었습니다. 그때 전 단지 금식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던 거 같아요. 새로운 문화를 체험해 본 거죠.

시간이 좀 흐르니까 신을 믿으면서 남들에게 어떤 증명을 해 보일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니까 한결 마음이 편해졌죠. 마음 속에 빈 칸이 모두 채워지는 느낌이었어요. 이제 제게 금식은 고난이 아니라 반대로 오랜 기다림 속에 찾아오는 영혼의 정화 의식입니다. 금식 중에는 TV를 보거나 반복되는 일상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모든 것을 제대로 하고 있구나 하는 만족감과 이해에서 영혼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요.

저희 집에서는 이제 금식을 당연한 행사로 생각을 해서 하냐 마냐 고민도 하지 않습니다. 보통 월동용으로 야채를 대량 구입해서 냉동시켜놓는데 꼭 금식을 위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고 항상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런 것이 금식 기간에 매우 요긴합니다. 마카로니와 버섯죽을 만들고 온갖 야채요리를 하는데 들어가니까요. 그렇다고 금식기간에 밥상이 빈약하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몇 가지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뿐이니까요. 아이가 둘 있는데 아이들까지 금식을 시키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우유도 마시고 고기도 먹어요. 큰 딸이 일곱 살이 되면 금식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거예요. 금식을 지킬지 스스로 결정하도록 말입니다.

성직자블라디미르신부

금식을 하다가 중도에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금식을 굶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두려운 게 당연합니다, 라고 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금식을 즐겁게 기다립니다. 영혼과 육체를 정화하는 기회니까요. 위장이 텅 비면 기도가 훨씬 수월합니다.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에게 금식재는 세상과 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자 스스로를 단련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행동보다는 머릿속으로 더 많은 죄를 저지르니까요. 생각으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저를 비롯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입니다.

찾아오는 신자들에게 언제나 금식재에 스스로를 단련하고 영혼을 정화시키라고 조언합니다. 처음 금식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시련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위로 오른다는 것이 원래 쉽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까지 갈 것도 없이 16층 아파트를 걸어서 올라보면 알 겁니다. 하지만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죠. 영혼의 사업도 마찬가집니다. 정신을 고양시키기는 힘들지만 타락하는 것은 너무나 수월합니다. 뱃속에 든 것보다는 머릿속에 든 것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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